최규열 아나운서 32년 KB S 마이크, 최규열씨 인터뷰

역사의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역사의 현장 1이 KBS 포항국에 근무한 것은 1963년 2월부터 1976년 4월까지 13년 2개월 4일이다. 세월이 너무 흘러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지만 늘 역사의 현장에 서 있었던 것 같다.그는 1965년 9월 20일 파월 청룡부대의 결단식 실황을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KBS 제1라디오로 전국에 중계방송했다.결단식에서 봤던 해병 용사들의 당당한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포항방송국 재직 13년간 우리 해병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 방송해 해병대의 용맹성을 잘 알고 있다.이 밖에 영일군 송라 앞바다에서 대간첩 작전훈련 중 순직한 강대현 대위 등 5명의 해병을 기리기 위해 사단본부 앞마당에 세워진 해병 5명의 탑 제막식 중계방송과 매년 8월 11일 열리는 용흥동 충혼탑 앞 포항전투 호국영령 추모식 실황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에는 장비가 워낙 열악해 고세혁 기술과장이 무전기를 통해 중계방송을 감행하기도 했다.

역사의 현장=1967년 10월 3일 개천절 영일군 대송면 괴동동에는 하얀 두루마기 시골 할아버지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이날 열리는 포항제철부지 정지작업 착공식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소문을 듣고 대통령 얼굴을 보자고 달려갔으나 정일권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하겠다고 해 결국 장기영 부총리로 바뀌고 말았다.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든 할아버지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정지작업 착공식은 시작됐고 장기영 부총리가 단상에 올라 한마디 축사를 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여기까지 하겠다며 서둘러 단상을 내려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1970년 4월 1일 역사적인 포항제철 착공식이 열렸다. 광활하게 정지된 3200만 평의 허허벌판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김학렬 부총리, 그리고 박태준 사장 등 3명이 일제히 발파 스위치를 누르자 파일해머의 요란한 굉음과 함께 역사적인 종합제철 건설의 울림이 영일만 하늘에 울려 퍼졌다. 이 생생한 장면을 KBS 포항방송 라디오 전파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한 그날의 감격은 결코 잊지 못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3울릉중계소 개소식이 열린 1975년 10월 21일은 마침 경찰의 날이었다.당시 울릉경찰서장과 협의해 경찰의 날 행사는 오후 2시로 연기했고 오전 10시 박재현 KBS 포항국장을 비롯한 울릉군 내 각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오후 7시에는 울릉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하공연을 했는데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KBS대구방송사 전속가수를 초청해 무대에 올렸더니 울릉군민들이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얼굴로 있자 실망한 표정에 얼마나 죄송하고 죄송했으며 지금도 얼굴이 붉어졌다.나의 첫 울릉도 방문은 이보다 앞선 1965년 9월 포항의 기관장들과 함께 강소룡 교통부장관의 울릉태하등대 직원들에게 보낼 추석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취재차 떠났는데 그때 가져간 영국제 녹음기는 그 모양이 어렸을 때 보아온 아이스케익통과 같다고 해서 우리는 늘 아이스케익통이라고 불렀다.이 무거운 녹음기를 메고 도동항에서 배로 태하동 선착장에 도착해 산 중턱에 있는 태하동대에 올라 등대장과 30분가량 녹음 대담을 나눈 뒤 도동항으로 돌아왔다. 그때 기관장 일행은 이미 도동항으로 떠났고, 혼자서 무거운 아이스케이크 통을 메고 산길을 타고 걸어온 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1976년 4월 22일 라디오 정오 뉴스를 끝으로 포항국을 떠나 부산 대구 대전 창원, 그리고 두 번째 대구 근무를 끝으로 객창 20년 종지부와 함께 내 일생의 KBS 아나운서 32년의 막을 내렸다.KBS 포항 50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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