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가끔 있지만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분명히 있다. 특히 정상이 그 산의 이름을 딴 국립공원 한가운데 우뚝 솟은 가장 높은 곳이라면 더욱 그렇고, 더구나 해발 3천 미터를 훌쩍 넘는 화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 엄청난 매력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
라성볼 캐닉 국립공원 캠핑 여행 둘째 날 오전에 범파스헬(Bumpass Hell)을 구경하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고개를 넘어 라슨 피크 트레일헤드 주차장으로 왔다. 안내판에는 다양한 주의사항과 함께 이곳 8500피트(2591m) 주차장에서 10457피트(3187m) 정상까지 왕복 5마일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안내돼 있다.
라센피크(Lassen Peak)는 약 27,000년 전에 분출한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플러그돔(plugdome) 화산인데, 저 위의 바위가 만들어질 당시의 옛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왼쪽 바위에는 화산답게 ‘불의 신’ 발칸의 눈(Vulcan’s Eye)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멀리 네 명의 여성분이 함께 올라가는 것이 보이는데 트레일은 오른쪽으로 돌아 다니게 되어 있었다.
4명 중 1명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내려와 3명이 남았지만 지혜가 이들을 추월해 앞서가고 있다. 라손 피크 꼭대기는 저 바위 너머에 있어서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돌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당시 산불 연기 때문에 흐린 하늘 아래 오전에 들른 헬렌 호수(Lake Helen)와 우리가 출발한 주차장이 보였다. 저 호수의 이름은 1864년 백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라슨 정상에 오른 Helen Tanner Brodt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주차장 입구 쪽에 우리 차가 서 있고, 이후 나무 밑에 빨간 캠핑 의자를 펼쳐 LTE 신호를 찾고 있는 아내가 언뜻 보인다.^^ 등산 고도가 상당히 높은 등산이라 아내는 그저 주차장에서 기다리겠다며 지혜와 단둘이 올라가 있는 중이다.
나무들이 조금 뻗어 있던 산비탈면을 벗어나면 본격적으로 돌계단과 스위치백으로 만들어진 경사가 시작되는데, 아까 소개한 여성분 중 마지막 한 분만 남아 있고 저 앞에 원색 옷을 입고 급히 올라가신다. 미끄럼틀 같은 산비탈 너머로 마침내 나타난 정상까지는 약 1마일 정도 남은 이곳은 빙하에 의해 깎인 그레이셜 노치(Glacial Notch)라고 불리는 곳이다.
원형극장처럼 파여 있는 맨 아래에 조금 남아 있는 저 하얀 얼음이 이곳을 깎아낸 빙하의 마지막 잔재이며, 그 뒤에 보이는 봉우리는 또 다른 플러그돔 화산인 리딩 피크(Reading Peak)라고 한다.
무너지는 바위틈에 정말 힘들게 뿌리를 내리고 아직 살아있는 이 나무를 지나 밑에서 올려다보던 정면의 저 바위 뒤 위까지 지그재그로 계속 올라가면
정상까지 0.5마일 남았다고 표시된 나무기둥이 나온다. 정상이 다가오자 급격히 추워졌고 바람도 거세게 불어 배낭에 넣은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정상 직전에는 많은 안내판이 잘 만들어져 있는 넓은 언덕이 나온다. 저 안내판의 제목은 ‘Land of Volcanoes’로 이곳 라슨볼 캐닉 국립공원에는 형성된 방법에 따라 구분하는 4가지 화산-실드(Shield), 신더콘(Cinder Cone), 컴포지트(Composite), 그리고 플러그 돔(Plug Dome)이 모두 가까이 보이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 언덕에서 이 등산로의 유일한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간 뒤 오른쪽에 보이는 돌산 뒤쪽으로 거의 기다리게 올라가면 정상에 도착한다. 왼쪽 설원 너머 검은 바위가 있는 곳이 분화구인데 우선 정상부터 올라가보자~
마지막 돌산을 오를 때 내려오는 남녀를 만났는데 허리에 보면 둘 다 샌들을 매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 튼튼한 등산화를 대신 신고 있는 건 아니고 둘 다 맨발이었어! 예전에 JMT에서도 맨발로 달리는 하이커를 본 적은 있는데, 이 거칠고 뾰족한 돌투성이 길을 왜 신발을 허리에 차고 맨발로 내리는지 정말 궁금했다.
라성피크에는 따로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없었고 (찾지 못했을 수도 있는) 밑에서 보였던 태양광 발전판에 연결된 한 관측시설과 안테나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정상의 바위가 모두 거칠고 날카로워 편안하게 앉아 쉴 곳도 찾기 어려웠다. (구글 맵에서 지도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정상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돌리며 찍고 있는 지혜…”우리 동네 마운트 볼디도 빨리 같이 올라가야 하는데~”
이 산이 솟아 27,000년 동안 조용하다가 1914년 5월 30일 스팀 분출(steamblast)이 시작된 분화구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올라올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분화구를 보는 순간 다시 터질 것 같아 빨리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서 모자가 해적선장처럼 좀 재미있게 나왔는데 저 바위 밑에 노란 꽃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같이 한 장 찍었다.
1914년 6월에 찍었다는 안내판의 큰 사진처럼 처음에는 연기만 새었으나 아래쪽으로 점점 올라오던 용암(lava)이 분출구를 막아 압력이 쌓여갔고 결국 1년 뒤인 1915년 5월 19일과 22일 두 차례의 큰 화산 폭발이 일어나 1921년까지 화산 활동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라슨은 1980년 세인트헬렌스 화산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미 본토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대규모 화산 폭발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많은 사진과 필름으로 기록돼 보도된 화산활동으로 알려졌다.
화산이 또 폭발할까 봐 두려웠는지 Glacial Notch 표지판이 있는 이곳까지 1마일을 거의 쉬지 않고 내려온 것 같다.^^ 라성볼 캐닉 국립공원을 포함한 9박 10일 자동차 여행을 할 당시 8월 말 캘리포니아 산불 연기가 아래로 자욱한 것이 보인다.
우리가 트레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넓은 주차장에 차가 2~3대뿐이었다. 그럼에도 캠핑장보다는 이곳 주차장이 LTE 신호가 조금 포착됐고 지혜도 급한 이메일을 보내는 등 일 처리를 조금 한 뒤에야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이날 우리의 등산을 가이아 GPS 앱으로 기록한 것으로 왕복에 3시간 반 정도가 소요됐음을 알 수 있다. 여기를클릭하면하이킹상세기록을볼수있다.
국립공원 밖에 나가지 않고 캠핑장에서만 2박째여서 전날 마트에서 미리 사둔 소시지와 빵, 클램차우더를 숯불에 데워 미국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10여 년 전 30일간의 자동차 캠프 여행을 하면서 캐나다 레이크 루이스 캠프장에서 같은 메뉴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그때나 지금이나 떠오른다. (당시 상황을 보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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