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런 분을, 정년 퇴임 후에도 여전히 천문대에 관측 제안서를 쓰고 모델을 만들고 논문도 쓰는, 과학자로서의 삶을 매일 만끽하며 지내는 분을 지도 교수로 두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도 일의 즐거움 중 하나다.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p.79
역사 속 하늘 찾기는 그저 이수학점을 채우려던 수강생에게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성가신 과제였겠지만, 내 요구사항의 의미를 납득한 학생들은 주 1주가 지날수록 더욱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강의실로 들어왔다.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뒤지며 자신만의 결론을 찾아보는 기쁨, 남의 글을 좁히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담백하게 써보는 즐거움을 발견한 친구들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오로라 혜성 초신성 빙하기 같은 얼핏 엉뚱한 단어와 함께 논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은 우리만의 달콤한 비밀 암호 같았다.
과제를 내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표절은 안 된다고 그렇게 주의를 줬음에도 논문을 베껴 제출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떻게든 스스로 과제를 완성했다. 학생들이 낸 보고서에는 케플러 초신성의 광도 변화 곡선도 있고 서리, 가뭄, 강설량 기록 분석도 포함돼 있었다. 수상한 검은 먼지가 보고된 기록을 모아보니 백두산 화산 분출 추정 연대와 비슷했다는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받았을 때는 거의 눈물이 났고.
남의 글을 베껴온 학생은 머뭇거리면서 보고서를 교탁에 살짝 올려놓고 갔지만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낸 친구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내 눈앞까지 보고서를 내밀었다. 컴퓨터로 그래프 그리는 게 익숙하지 않다며 각지에 색연필로 그린 그래프를 자랑스럽게 내민 학생과는 “아싸!”라는 표정을 나누며 함께 웃었다.
천문학자들은 별을 보지 않는다 p.51-52
그리스도 안에 여러분에게 1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여럿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제가 복음을 위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4:15
수업, “우주의 이해”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만났던 인생 선생님들을 돌아봤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심이 늦게 생겼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교수들은 미국에서 공부했을 때의 교수들이었습니다. 특히 신학 중에서 ‘역사’ 파트는 목회를 꿈꾸는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그다지 인기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저를 많은 역사 교수님들이 6년 동안 쉬지 않고 저를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적이 아닌 역사를 사랑하게 해주셨고 교수들이 직접 걸어온 생각과 경험의 루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오늘 그 교수들의 모습을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저자인 심채경 박사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때 저자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들과 같은 학부생 시절에 쓴 ‘소빙기와 조선왕조실록’을 샘플로 주어 역사 사료에서 천문, 기상 관측 자료를 무엇이든 찾아오라는 과제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조선왕조실록에서 혜성을 찾아내 76년 만에 찾는 손님을 고려 성종 때부터 기록한 것을 발견하고 우주를 경험하면서 느낀 기쁨과 보람을 학생들에게 느끼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모두가 그 의도와 목적을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기대보다 많은 학생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경험한 우주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어떤 학생은 학부생으로서 훌륭한 기록을 찾기도 하고 신선한 방법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과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백두산의 화산 분출 연대와 비슷한 시기에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사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친구는 모서리 종이에 색연필로 그린 그래프로 만든 과제를 자랑스럽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정성 있는 발견을 한 학생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고생한 보람과 깨달음의 흥분이 있었다는 것을 나눠줍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면서 스승으로서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 우주의 이해 친구들이 이제는 내 얼굴도 이름도 잊었겠지만 그중 누군가는 역사책을 읽거나 사극을 볼 때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중 누군가는 북두칠성이 나오는 <선덕여왕>이나 일식을 소재로 한 <해를 품은 달>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그중 누군가는 멋진 작품을 만들면 꼭 알려달라는 내 부탁을 잊지 않고 자랑스러운 메일을 보내주기를 나는 가끔 욕심을 낸다.(p.53)
© philbotha, 출처 Unsplash
내 ‘우주의 이해’ 친구들이 이제는 내 얼굴도 이름도 잊었겠지만, 그중 누군가는 역사책을 읽거나 사극을 볼 때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주길 바란다.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p.52
오늘날 인사이트가 가르치는 스승은 많지만 부모는 여럿 있을 수 없다는 바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그냥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향한 꿈을 꾸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기도하는 게 부모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마음에 품고 복음을 전하거나 그 사람은 몰라도 기도하고 사랑하는 이웃에게 부모의 사랑과 같은 종류의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요? 조건 없는 사랑, 자신이 겪은 일을 자랑거리로 소개하고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것. 저도 오늘 목사님으로 정신 차릴게요. 복음을 통해 그 사람이 교회에 가는 것, 세례 받는 것을 보지 않고도 예수님을 자랑하고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저와 스낵타임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