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국민배우로 잘 알려진 장=폴 베르몽드(Jean-Paul Belmando)가 6일 파리 자택에서 8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33년 파리 서부 근교 누이슐센에서 알제리 태생의 부유한 조각가의 아들로 태어난 베르몬드는 1940년대 후반 한때 아마추어 복서 생활을 했던 복싱 지망생이자 사이클과 축구를 좋아하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성장했다.그러다 1950년대 후반 영화배우로 데뷔해 마침 그 시기에 프랑스 영화계를 휩쓴 기성세대의 관습적 영화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인 ‘누벨 버그(nouvellevague;new wave)’ 바람 속에서 독특한 외모와 연기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Jean-Paul Belmondo in’Breathless’ (1960) with Jean Seberg
벨몬드는 1960년 그의 출세작인 장=뤽 고다르(Jean-Luc Goodard) 감독의 ‘마음대로 해(Breathless)’를 비롯해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맘대로 해’에서 벨몬드는 미국 할리우드 여류 스타 진 세버그(Jean Seberg)와 호흡을 맞춘 연기로 출세 바람을 탔다.

Jean-Paul Belmondo in’Two Women’ (1960) with Sophia Loren
벨몬드는 그해 이탈리아의 소피아 로렌(Sophia Loren)과 함께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uica) 감독의 ‘두 여자(Two Women)’에도 출연해 연기자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소피아 로렌은 이 영화로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프랑스인들은 베르몽드를 베벨(Bebel)이라는 애칭으로 부르자 그를 아꼈다. 사실 벨몬드는 잘생긴 배우가 아니다. 얼굴이 울퉁불퉁하고 평평한 코에 반쯤 감긴 듯한 눈이 그랬다. 하지만 이런 외모가 오히려 늘 좌절하는 실패자의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호재로 작용한 측면이 컸다. 그 외모에 늘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은 그에게 반항이라는 브랜드를 안겨주며 cool의 상징이 됐다. 벨몬드가 미국의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랜드, 험프리 보가트에 비교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폴 베르몽드의 죽음으로 많은 외신이 추모 기사를 쏟아내고 있어 프랑스인들의 추모 열기도 뜨겁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위트가 담긴 메시지로 베르몽드의 죽음을 애도했다.베르몽드는 프랑스 영화의 국보급이었고 그의 연기는 폭소와 폭소로 가득 찼다. 그 속에서 우리 모두가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진 세버그와 함께한 벨몬드의 독특한 사진 한 장.라이카 블랙 M3에서 진 세버그를 찍으려는 모습이다. 이 사진과 관련해 벨몬드가 생전에 라이카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에 관해 찾아보면 나오지 않는다.
관련기사 :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11811293StarofBreathless, Jean-Paul Belmondowasone of France’smostpopularactors.www.b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