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다 – 경기신문 2020~0 713” 사고실험 – 죽음을

https://www.kgnews.co.kr/ news/article.html?no=592278철학에서 사고실험이라는 수행방법이 있다. 철학적 개념이나 이론의 적합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특정한 가정이나 상황을 설정하고 생각으로 실험해 보는 작업을 말한다. 상아탑 속에 갇혀 버린 철학을 현실로 불러내고 생활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철학상담으로

상아탑 속에 갇혀버린 철학을 현실로 불러내 생활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려는 철학상담에서 김성희 교수는 사고실험을 방법론으로 제안한다. 이는 내담자가 철학적 사고실험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사고구조를 개선하도록 도와주거나 내담자의 사고에 새로운 통찰과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고정되고 폐쇄된 사고체계로 전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던져진 본질적인 삶에 대해 순수한 인간은 대개 어리석고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고통이 발생한다. 한나 아렌트는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삶의 과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예측과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자신의 한계를 일깨우는 좋은 소재로 둔갑하고 있다. 몸과 마음의 증상은 복잡한 생활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치유 과정에서 이러한 상황을 잘 살펴보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에는 나는 사고 실험을 적용하곤 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질문은 현재와 멀리 떨어져서 지금을 내다볼 수 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은가? 그렇지 않으면 왜 당장 죽어서는 안 되는가. 그 이유를 스스로 생각하라고 요청하는 삶의 이유 찾기 사고실험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붉은 약을 먹으면 죽고 파란 약을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상황을 가정한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은지 깊이 생각해 본다. 그 후 죽음을 피해 살기 위해 푸른 약을 선택했다면 그 선택의 이유는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더하겠다. 당신에게 남은 인생이 3년 있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간단한 이 두 가지 질문에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으로 가슴이 북받치는 병 증세로 내원한 임신 9주차 임신부는 친정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며 부모님께 감사하고 또 미안하다며 자신도 예상치 못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려서부터 10년 넘게 열심히 운동만 했는데 왜 하는지 뜻을 모르겠다며 내원한 운동선수들은 여행을 가서 요리를 하는 평범한 휴식을 원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 오래 전에 작성했다는 공개 유언장을 보면 꼼꼼하게 작성한 글에서 자신의 죽음에 직면해 희망하는 삶을 그려본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때 꿈꾸던 죽음의 모습은 요즘 같지 않은데 성희롱을 범죄로 규정하게 한 역사적 재판의 변론을 맡아 여성인권 시민운동의 대명사였던 그가 성희롱 고소장의 대상이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세월과 권력의 마성으로 유언장의 기억이 희미해진 것일까. 아니면 앙금도 법정과 일상에서의 인권 기준이 달랐던 것일까.

죽음 속에서 모든 인생의 일들은 소등한다. 빛을 잃어버리다. 유감스럽게도 그에겐 삶의 시간뿐 아니라 평생 주장해온 정의도, 인권과 여성주의도 퇴색했다. 인생은 때때로 예상외로 흐른다. 언젠가 한번 본 고인의 소박한 웃음이 쓸쓸하게 떠오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희다강한의원 배은주 원장

[출처] 경기신문(https://www.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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