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스탤지어> 리뷰를 쓰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원래 이런 전문용어를 안 쓰는 성격인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네요. 2년 전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유해한 정보나 리뷰, 의견까지 필터링 없이 보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트위터에서 <노스탤지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보게 된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그리고 며칠 동안 이걸 설명하는 글을 하나 쓰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네요. 그래서 알기 쉬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간단하게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설명해 볼까 합니다.


트루먼쇼 딱 2018년 12월에 트루먼쇼가 재개봉돼서 얘기하기 편할 것 같아요.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30년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던 트루먼이 자신의 모든 행동이 전 세계에 중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곳을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의 엔딩에 대해 꽤 많은 사람들이 재미없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트루먼을 괴롭혀온 프로듀서(악당)가 당연히 받아야 할 벌(권선징악)을 받을 수도 있고, 둘이 대화만 나누고 문을 열고 나가는 것으로 끝나버리니 당연히 그렇게 하겠죠. 게다가 달에 위치한 스튜디오를 탈출해도 여전히 달, 지구에 있는 첫사랑으로 갈 방법도 없고 나오자마자 죽을 것이 뻔해 말도 안 돼 보입니다. 그래서 <트루먼 쇼> 대단하다거나 이런 영화가 20년이 지난 후에 재개봉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교과서 같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트루먼은 프로듀서의 지시대로 행동 내지 조종당하는 삶, 자유의지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선택하지 못하고 프로듀서가 정해준 동네 아가씨와 결혼해 살고 뱃사람이 되고 싶은 꿈 대신 안정된 직장, 다수가 ‘최상의 삶’으로 꿈꾸는 TV 속 이상적인 행복한 남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다시 말해~ 할아버지, 아버지(프로듀서) 때 최상이었던 선택 그대로 안정된 직장과 내조를 할 수 있는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당신이 최상이야’라고 정해진 강요된 획일화된 삶을 아들(트루먼)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으로서 예를 들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여대에 들어가서 맞선으로 돈을 버는 남자를 만나고, 아이 셋을 낳은 행복한 가정주부가 되는 삶이 최고라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영화 내에 나오는 광고도 비슷합니다. 획일화된 제품을 똑같이 구입하고 구입할 수 있는 특정 계층에 속함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는 바로 이것을 리얼리티 쇼라는 포맷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집단화, 획일화, 무의미한 도덕과 질서를 거부하고 개인에 대한 존중이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기본이고 최근 인권, 휴머니즘, 페미니즘에서도 공통적으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선징악적인 스토리를 지양하는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부인데, 그것은 이 아래에 설명합니다.경계가 사라지는 영화 쪽으로는 처음이자 최고로 이야기하시는 우디 앨런 영화를 얘기하는 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70~80년대 영화라 보신 분들이 상당히 적을 것 같다. 최근의 것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미드 <오피스>, <당신보다 그게 좋아>는 중간중간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리고 있습니다. 영화/드라마 속 픽션의 세계와 관객/시청자가 속한 현실 세계의 경계를 허물어 마치 옆 동네 회사에서 또는 옆집 여성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보는 듯한 착시효과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랭크 언더우드와 클레어 언더우드가 시청자를 향해 직접 말을 거는 것 역시 이 분류에 속합니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작가가 직접(레모니 스니켓은 작가 다니엘 핸들러의 필명)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고 있고, 울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갑자기 쌀가게 아저씨를 부르거나 1박1일 무한도전에서는 제작진이 제3의 출연자로 쇼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구분되어야 할 경계, 현실과 허구가 사라지는 것이 영화, 드라마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야기됩니다.선과 악의 경계까지 사라지는 트루먼쇼에서 선과 악의 구분법으로 보면 프로듀서는 악당입니다. 하지만 권선징악적 결말은 아닙니다. 일단 트루먼쇼에서 시청자들도 공범입니다. 트루먼의 획일화된 삶, 강요된 삶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그것을 이상향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양한 인간성의 일부로 다루고 있을 뿐입니다.
권선징악을 피하고 인간성의 일부만 보고 있기 때문에 범죄자도 주인공이 됩니다.
<덱스터>는 죽어 마땅한 자만을 응징하는, <향수살인자 이야기>는 사랑과 향수에 집착한 천재, 넷플릭스 <너의 모든 것>은 자격지심과 그로 인한 위선이 굳어져 있는… 드라마 내 묘사를 제거해보면 모두 연쇄살인마, 스토커, 살인자들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선과 악, 이성적 구분법을 무시하고 악인이나 범죄자 개개인의 내면을 그리기도 합니다. 보통 시청자/관객 댓글에 “폭력미화”라는 댓글이 종종 등장하는 영화/드라마입니다. 매일 울리만 찾다가 죽어버린 조폭 영화가 코미디로 둔갑해 조폭 개개인의 심리 묘사를 다루는 등 이런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합니다.
선과 악이 불분명해지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도 사라지고 한 인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복수는 내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모두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법으로 보면 뭔가 모호하고 피해자의 가해행위 복수는 성공도 실패도 못한 것처럼 모호하게 끝납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에 엄청난 댓글이 달리고 있는 <블랙미러> 세 번째 시즌의 <가만히 춤춰라>와 네 번째 시즌의 <USS 칼리스타>도 그렇습니다.
그 외 <매트릭스>가 현실과의 사이보공간(환상)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형이상학적 접근, <경마장으로 가는 길>에서는 입으로는 아는 척 잘난 척 어려운 말(이성) 가득하지만 머리와 발허리는 육체적 욕망을 쫓아 범죄자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스토리로 이성과 욕망의 충돌을 그려 영국 코미디 <몬티파이 선의 플라잉 서커스>는 허구를 실제라고 믿게 만드는 일련의 영화/드라마 작법과는 달리 “이 장면은 허구입니다”라고 노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 등 이런 것도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합니다. 혹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제 없어졌다고도 하지만 그 정신이 현재 장르를 넘나들며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말을 말하면 여러분이 지금 보는 영화/드라마에는 왠지 모르게 상당량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합니다. 이러한 철학, 문화적 사조가 밝혀진 지 벌써 50년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딱히 이런 구분법 굳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한번 읽고 잊어버려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단, 한번 살펴보면 생각의 영역이 넓어집니다.그러니까 안전띠를 풀고 비포장도로를 시속 200km/h로 밟으세요.
특히 SF 쪽은… 가능성을 제외한 이성적 사고를 일단 떠나야만 진정한 맛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쓰면서 하루가 지난 다른 생각이 났네요.^^
최근 구글에서 그리스 신화의 일부를 자신만의 해석을 사용하는 것처럼 입사시험 문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삼성도 그런 입사시험 문제를 준비하고 있네. 그 대답이 법대로 처리하느냐 인간의 정을 잘못 들이받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시각 “이성과 욕망의 충돌”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생활에 조금 도움이 됩니다…^^